外來花

[스크랩] 불행한 왕. 세종

나는_염정의 2005. 3. 17. 13:53
임찬순 칼럼집, 뒷목출판사, 詩人이 괴로워하는 사회/코리아3000/염정의
임찬순 칼럼집, 뒷목출판사, 詩人이 괴로워하는 사회
    1, 우리시대 위징은 있는가____불행한 왕. 세종
세종은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한 왕이었다.
그는 세가지 컴플랙스에 시달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첫째, 嫡長子가 아닌데도 태종에 의해 억압적으로 왕위에 오른것을 괴로워 했다.

둘째,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아버지 태종이 장인인 영의정 심온을 역모죄로 몰아 목숨을 빼앗고 장모와 처제들은 노비로 8년간 희생시켰다. 그로 인해 아내 소헌왕후는 평생 가슴에 못이 박혀 일찍 타계했을 정도다. 자신 때문에 형인 양녕은 세자 자리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다.

셋째, 조선은 태조가 터를 닦고 태종이 기둥을 세우고 세종이 완성시킨 나라였다. 그런 보국안민에 관한 책무가 일생 그의 머리를 짓눌렀다. 그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여 『일중독자』가 되었다 한다.

세종의 하루를 기록한 자료가 있다.

세종 14년 8월 16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죽 한그릇을 들고 하루를 시작해서 6시부터 2시간 동안 근정전에서 대조회, 또 2시간 동안 사정전에서 윤대(구체적 업무)를 행함. 다시 경연장으로 자리를 옮겨 경연에 참석(그는 모두 1,885회의 경연에 참석하여 역대 왕 가운데 가장 많다) 한 후,
점심에는 왕실 어른들을 찾아 인사하고, 오후 3시부터 상소를 검토한 후, 황희와 맹사성 등 정승들과 여진족 외교정책을 협의하는 등 밤 8시에 왕의 공식업무를 마치고도 집현전 학자들이 펴내는 책 교정을 밤새 봤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정종의 국상, 뒤이어 어머니 원경왕후 국상, 2년 뒤 태종의 국상을 치뤘다. 그런데다가 일생동안 병마와 싸웠다.

질병에 관해 세종실록에는 50회나 기록되어 있을정도다. 20대 후반부터 두통, 30대 후반부터 풍병과 종기, 40대 초반부터 안질과 소갈병(당뇨), 그 밖에도 수전증, 허리병, 심한 다리통증에 편안한 날이 없었다.

지나친 격무에 시달려 안질이 악화되어 만년에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고
등창, 장내장, 전립선염, 방광염, 그리고 당뇨 합병증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딸 정소공주와 두 아들이 연달아 죽고 2년 후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세자(문종)빈을 두번이나 폐비시키고 세번째는 단종을 낳은지 이틀만에 죽었다. 1450년 54세(제위 32년)로 운명할 때 문종은 이미 병색이 짙었고 단종은 겨우 9세였다.

개인적인 불행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나라를 깃발처럼 드높인 왕, 그러나 우리는 그를 거울 삼아 부정부패로 뒤흔들리는 이 나라를 다시 한번 냅다 일으킨 메시아적 지도자를 기다렸으나 아무도 그런 기대를 채우지 못 했다

지금 나라는 절망에 빠져 있고, 사람들은 세종처럼 살신성인하는 통치자를 원하고 있으나, 지난 50년 동안 제왕적 대통령만 나와서 우리는 한스러울 뿐이다

출처 : 여행등산사진 그리고 야생화
글쓴이 : 廉正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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