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속에 찬데...라든가, 어린 임금을 보좌하다가 수양대군에게 철퇴를 맞고 쓸어진 충절이 뛰어난 그를 사람들은 大虎라 불렀다...라는 두 문장만 읽어도 우리는 금방 그가 누구인지 안다
단 한문장만 읽어도 금방안다.
金宗瑞(1390~1453)는 여진족을 물리치고 육진을 설치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국경선을 확정했다. 세종때였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있다할지라도 만약에 종서가 없었더라면 이런일은 이루어지지 못 하였으리라...라고 세종은 말했다. 그는 고려사를 고쳐 쓰고 세종실록을 편찬하기도 한 학자였으며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명장이었다.
흔한표현법으로 전쟁터에 나가면 장군이고 조정으로 들어 오면 정승이 되는 이른바 出將入相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희(1363~1452) 정승 앞에서는 밥이었다. 김종서는 새파란 나이에 황희를 만났는데 대뜸 그에게 찍히고 말았다.
황희는 첫 만남부터 그를 미워하고 얕잡아 보면서 터무니 없이 괴롭혔다. 아무것도 아닌걸 가지고 주위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큼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그때 낯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바로 세워 놓고 또 한바탕 사정없이 모독적인 언사를 퍼부어 댔다.
퇴근도 못하게 산더미 같은 서류를 떠안겼다.
그래서 툭하면 일거리를 집에까지 가져가 밤을 세우곤 했다. 그 핑계로 다음날 조금이라도 늦게 출근하면 또 날벼락을 때렸다.
회식이 있을라치면 예외없이 김종서보고 혼자 사무실을 지키게 하고 궂은 일을 골라 시키면서 싫으면 사표를 내라고 협박을 하곤 했다
그는 출근만 했다하면 피투성이가 되도록 치 받혀서 얼굴이 초췌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참고 견디면서 밤새워 일하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고 감정을 최대한으로 절제하면서 학문에 힘쓰고 틈틈이 무예까지 닦았다. 안으로는 뜨겁고 겉으로는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자기 훈련을 쌓아 스스로 극복했다
친구가 보다 못해 황희의 지나침을 규탄하자 그가 뚜벅 말했다.
이 사람아, 내 그를 큰 인물로 키우고 다듬는 중일세. 두고보게나, 그는 앞으로 나라의 큰 기둥이 될걸세...
그처럼 황희는 나라의 동량을 키우고 다듬음에 있어서 매우 엄격하고 철저했다. 그가 수양에게 죽지 않았다면 그는 보다 더 크게 쓰여 졌을 것이다
지금 그런차원의 교육을 시키면 학부모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 교단에서 쫒겨날 것이다.
인물키우기, 그릇키우기...교육이 그래서 이루어지지 않아 황희나 김종서만큼의 인물이 태어나지 못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뛰어난 인물만이 어려운 시대를 이끌고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건지는 법 아닌가
그런 인물만들기 교육이 지금은 너무나 빈약하다고 누구나 생각한다. 시험과 일류대학과 취업에 눈이 어두워 훌륭한 인물 키우기는 뒷전이 되고 있다.